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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不男의 雜文

MG34의 노리쇠를 당기고...

by 이브남 2004. 3. 14.



주위는 아무런 생명체가 없는것 처럼 적막했다.
가끔 시원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도대체 이 낮선 마을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이제는 아득한 기억처럼 느껴질 뿐이다.

엄지 손톱을 물어뜯어 "퇴~" 하고 뱉었다.

.

.



내가 처음 왔을 때, 마을은 정말, 이쁘고 아담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것은,
키재기를 하듯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지붕들 밑에
낮으막한 돌담들 사이로 난 조그만 골목길들이다.

마을 가운데엔, 동그란 분수를 가진 작은 광장이 있었다.

좌측으로 붉은 벽돌로 지어진 우체국과 옆으로 병원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4층 짜리 여관이 있어 여행객이나 타지 사람들이 묶곤하였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여관의 우측에는 큼지막한 돌로 다져진 큰 길이 있었고,
길 건너편엔 빵집, 시계방, 카페, 주점, 가게 같은 상가들이 늘어서 있었다.

상가들을 지나면 성당과 그 주변엔 묘지가 있는 공원이 있었다.

묘지의 비석은 이 마을 특유의 돌로 만들어 졌는데,
아이보리색에 카키색이 군데군데 섞여있기 때문에...

음산해야할 묘지의 분위기가 오히려 따뜻하기만 했다.

그 외에는 가옥과 가옥들 사이로 아기자기하게 나있는,
생각보다, 꽤 많은 골목길들이 전부였다.


특히 이 마을은 골목길이 많은데다 복잡하게 연결되어,
가끔은 길눈 어두운 마을 사람들도 길을 잃곤 했는데...

일을 보고 돌아오다 몇번씩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헤맸지만,
나름대로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었고...

운 좋은날이면 어여쁜 아가씨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이 골목 만큼 끔찍한것이 없었다.
골목에서 길을 잃게 되면 바로 죽음이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이반"들과 전투중에 골목길로 들어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저격수의 탄환에, 막다른 골목에 포위되어...
수많은 동료들이 이 "미로"에서 쓰러져 갔다.


우리는 이 골목길에"크로노스의 미로" 라고 이름을 붙였다.


궁여지책으로 대대장은 시야확보를 위하여,
골목을 가리고 있는 집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88mm 대전차포TNT로 집들을 전부 쓸어 버렸다.

바로 몇일전 일이었다.

사람들이 마을을 떠난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다.


지금 남은건...
뼈대만 남은 성당과 몇채의 가옥, 그도 2층은 절반이 날아갔다.

길에는 건물들의 잔해와 온통 바리케이트 투성이다.
그리고 병원과 여관 건물이 남아 있는 건물 전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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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한번 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고무와 나무 탄 냄새가 섞여 매우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스... 두려워?"

"...."

"무섭지? 그래... 무서운거야..."

"우리가 얼마나 버틸거라고 생각하나? 하루? 1시간?"

"....."

"어차피 방어자는 공격자에게 언젠가 패할수 밖에 없는운명이야..."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막강 Das Reich의 기갑척탄병 아닌가~"

"한스, 자네가 차고 있는 버클에 써 있는걸 보라고..."


하늘이 우리와 함께한다!"


하늘이 우리와 함께 한다고...
곧 하늘이 우리를 거두어 간다는 것인가?



멀리서 소름돋을 만큼 듣기 싫은 쇳덩어리의 마찰음과
기계들의 트림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물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느낌을,
온몸에서 거부하듯, 상반신이 부르르 떨렸다.

엄지손톱을 쉴새 없이 물어뜯었다.
어느새 손톱뿌리가 뜯겨나가 피가 맺혀 있었다.

엄지 손가락을 입에 넣어 쭉 빨았다.
철의 비리고 짭쪼름한 맛이 입안으로 스며들었다.

주위에선 "철커덕"하는 장전소리가 맞은편 건물까지 연속적으로 퍼져갔다.

특종을 앞에둔 기자들이 셔터를 눌러대듯이...



마을 뒤의 언덕에,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88mm 대전차포가,
몇분후, 우리의 미래를 알고 있는 마.녀. 와 같았다.



철모를 깊게 눌러쓰고 멜빵을 꽉 조였다.
그리고 MG34의 노리쇠를 뒤로 힘껏 당겼다.




2003년 5월 26일... eve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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