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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不男의 雜文

그녀의 얼굴...

by 이브남 2005. 8. 14.


시원하게 펴진 이마.
무언가를 가득 담은 두 눈.
오똑하진 않지만 잘빠진 콧날.
작지만 도톰하게 올라온 꼭 다문 입술.
턱에서 귀 밑까지 이어지는부드러운 라인.
이마와 뺨을 타고 흘러 내린 머리칼.


그가 그리는 여자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비슷하다.

오늘도매점 아주머니가 한마디 하고 지나간다.

"총각, 총각이 그리는 여자 얼굴은 맨날 보면 눈매하고 표정이 그게 그거 같단 말야."


작은 공원의 저녁은 늘...

연인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
저녁 공연을 홍보하러 직접 나온 배우.

...들로 부산하다.

작고 동그란 스툴이젤을 놓은 남자는...
원래 공원 배경의 한부분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기억한다.

눈웃음이 예뻐서 그 "초생달" 같은 눈꼬리를 보면,
어떤 사람이든 따라 웃음짓게 만들었던 그 사람을...

그는, 그리워 한다.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이를 만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그 사람...

그가 눈을 떠 잠이 들 때까지 한시도 떠난 적 없는,
그래서 더욱 얼굴은 희미해지는 그녀를...

그는 사랑한다.

.
.



선선한 저녁 바람이 솔솔 불더니,
같이 쓸려온 듯한 장미향이 코 끝을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이건... 제 얼굴이죠?"

눈꼬리를 살짝 내리며 웃음을 짓는 그녀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까만 쉬폰스커트와 하얀 니트를 입은 그녀가,

분명, 그렇게 그립던그.녀. 가 뒤에서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걸..."

어쩔줄을 몰라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수그린 남자의 얼굴은...
금세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여기 이렇게 가득하게 그려진 내가 이렇게나 많은걸요."

여자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넘겨 보며...

"여기서 늘 그렇게 그윽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잖아요"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앞에 서서 물끄러미쳐다 보는 그녀의 얼굴엔,
말할 수 없이 따뜻한 표정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순간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그녀는 어떤 남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그림을 한장 빼들었다.

"이 그림이 나라면... 이젠 더이상 그릴 필요가 없어요"

그녀는 그림을 자기 스케치북에 꼭 끼워 넣었다.
활짝 웃는 얼굴엔 살짝 내려간 눈꼬리가 초생달 처럼 걸려 있었다.



매점 주인 아주머니가 그 앞을 슬쩍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소리와 노래소리에...

공원은 아직도 시끌시끌 했다.



.
.



"Pepita (polka)"-Francisco Tarrega
Guitar -David Russ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