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훈씨~ 기쁜소식!"
"슈미트 연주의스칼랏티, 남은게 있었네요"
"아... 그래요? 그것도 챙겨 주세요"
절판이라 해서 꽤 아쉬워 했던 음반이었지만,
순간... "아차" 싶은 이브남씨의표정이다.
그날도"참아야 하느니라"를 속으로 외쳐 댔지만...
가격대비 성능만족! 그 경제적인 가격에, 이브남씨...
바흐의 4 for 1 씨디를 덜컥 집어 들고 말았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와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을,
씨디 한장 가격으로 들을수 있는데 왜 탐이 안나겠는가?
만약 여유만 있음, 서너개 더 들고 올 태세였다.
"전부 해서... 86,800원 입니다"
"어... 왜 이리 많이 나온거죠?"
"스칼랏티가 19,000원예요... 프랑스에서 바루 넘어온거라서..."
직수입가에 비해 그리 비싸지 않다며생글생글한 미소를 짓는
이쁜 실장님의 얼굴에 조금 깎아 달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씨디 한장에 2만원 정도면 좀 쎈듯하다는 이브남씨의 표정...
결국 열심히 모은 적립 포인트를 몽땅 써버렸다.
씨디를 담은 쇼핑백을 한아름 안고 나왔지만,
내심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수 없는 이브남씨...
집에 있는 아내 때문이다.
.
.
현관문을 몰래 열고 들어가는 이브남씨...
결국 아내에게들키고 말았다.
갖은 구박과 모진 수모에,
근신중이다.
프라모델 비행기 만든다구 온방을 스프레이 도배로,
쉬는 날엔 배짱이 처럼 기타만 치구 앉아 있는 남편...
얼마전 재충전의 시간을 갖겠다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백수로 지낸지 벌써 한달째이다.
시간강사로 뛰는 아내의 벌이로는 생활비도 빠듯하다.
안그래두 불만 많은데, 몇일전엔...
"당신... 이 카드 명세서의 풍월당... 이거 모야?"
"...."
"단란주점 아냐? 모가 이렇게 많이 나왔어?"
"......."
풍월당은... 이브남씨의 단골 레코드 가게이다.
음반매장에 겉봉도 뜯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반,
인터넷에 올려진 매혹적인 음반리뷰를 보면...
주체할수 없는 남편 때문에,
아내는 속상하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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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두부와 애호박을 설겅설겅 썰어,
된장을 풀어놓은 뚝배기에 쏟아넣고 가스레인지의 불을 켰다.
그리곤 힐끔 남편의 동태를 살펴본다.
방금 혼난건 기억이나 하는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씨디 포장을 뜯어 내곤, 그 내용에 몰두하고 있다.
처음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지만,
어린아이 같이 신난 얼굴이 왠지 귀여워 보였다.
연애시절 남편이 들려주는 음악이야기는 정말 좋았다.
잘 모르는 음악도.
알지만 관심 없었던 음악도.
남편이 토를 달아 주면 정말 신기하리 만큼 음악에 빠지곤했다.
그런 남편의 매력에 푹 빠진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내였다.
보고싶은 연주회라면 외국도 마다하지 않았고,
지금 가지고 있는음반량만 해도 거의 매니아 수준이다.
왠만한 음반엔죄다 연주자의 싸인이 자리잡고 있다.
결혼후...
빡빡한 생활에 음악을 즐긴다는 자체가 사치스러운거 같아,
아내는 이런 남편에게 싫은소리를 했지만...
내심...
음악에 대한 순수함과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은 남편이,
대견스럽고 고맙기도 했다.
'어린애 같은 당신말야... 이래서 미워할수 없다니까~'
뚝배기 속의 된장찌개는 "꼬르륵" 소리를 내며,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2004년 5월의 어느날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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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ita (polka)" - Francisco Tarrega
Guitar - David Russ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