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곽재구 "사평역(沙平驛)에서"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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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난 이름 모르는 간이역 대합실에 앉아 있는줄 알았다.
상당히 감상적이지만 회화적인 시였다.
머릿속에서 자꾸 그림을 그리게 하는 글들을 좋아했기에
더욱 뇌리 깊숙히 박힌듯 싶다.
그후TV 단막극에서 이시를 다시 만날수 있었다..
임철우란 작가가 소설로 재구성 한것이었다.
마지막 하얗게 눈 내리는 장면에선...
울뻔했다. ㅠㅠ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싯구가 떠올랐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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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에서 특별한 감정이나, 사상을 찾기가 별루인나에게
이 시에서... 궁금한게 있었다.
"사평역이 어디에 있지?"
호기심에 죽고 사는 이브남, 바로 지도책을 열어 보았다.
하지만 그런 기차역은 없었다.
대신 "사평(沙平)"이라는 예쁜 이름의 마을 하나를 발견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이 시는...
작가의 고향 근처, "남평역"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언젠가 한번 꼭 찾아가 보리라..."
결국... 작년 여름에 무작정 목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ㅡ.○;
남광주, 남평, 사평... 이렇게 세곳을 돌아 다녔고...
사진 몇장으로 기록을 남겼다.
괜시리 폼잡는다고 몇년간 방치 되었던 고물 수동 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오랜만에 조작해서인지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남평읍와 역으로 가는 길에서 찍은 1통 홀라당 날리고,
사평에서 찍은 한통만이 온전하게 현상되었다.
(다행히 남평역에서 찍은건반이나 살려냈다... --v)
(시의 배경이된 남평역에서 한컷~ ^^*)
하루에 광주에서 순천까지 통근열차가 왕복 4회 밖에 없는
간이역이라 광주역에서 남평역으로 가는데 꽤 고생했는데...
남평읍에서 역까지 땡볕에 15분 정도걸어야 했다.
하지만 가는 길이 참 편안하고 정겨웠다.
양옆에 낮은 산들... 그리고 시냇물 같은 작은강...
...을 끼고 드문드문 서있는 집들... ~.~
남평, 사평이... 모두 이런 마을이었다.
어느덧 역에 도착하니,구식역사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남평역 입구와 주변 풍경... 구식 역사가 정겹다 ~.~)
역사 내부는 예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많은 부분이바뀌어 있었다.
벽에는 열차시각표와 홍보포스터 외에 시 두편이 걸려 있었고,
짐작대로 그 중 하나는... 곽재구의 "사평역"이었다.
(지금은 보기 힘든 대합실 나무 의자와, 역장님이 손수 만드셨다는 화단...)
사진을 다 찍고 가방을 챙기려는데, 땀 좀 식히고 가라면서
역장님이 역무실에서 커피를 타 주셨다. ^^*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많이 놀란 표정...
(내가 생각해도 좀 어이없다... ㅡ.○;)
나름대로 남평역에 얽힌 사연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그래서 일부러 역사를 예전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시의 제목이니 한번 들러 보는 것도 좋을듯 해서 사평까지 가기로 했다.
광주외곽은 생각보다 대중교통이 꽤 불편했는데...
남평에서 남광주로 이동, 다시 사평으로 가는 길은 1시간이나 걸렸다.
(남평역에서 사평으로가는 길은 괜찮은 드라이브 코스라 한다. ^^)
(사평 초입의 풍경...)
사평(沙平)이란 말 처럼 강주변엔 정말 모래라도 있을것 같은...
아늑한 느낌의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
(사평읍내...)
사평읍내 보다는 남평읍이 훨씬 감상적이었다.
터미널과 그 주변의 다방, 이발소, 수퍼마켓... 그리고 시장...
그 동네의 분위기를 파악하려면...
근처의 다방이나 이발소를 가야한다는 본인의 소신에 따라!
두군데의 다방과 한곳의 이발소를 찾아 셔터를 눌렀다.
남평에서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다방에는 가보지 못했다. ㅠㅠ
(저녁에 아는 분을 만나기로 했는데 벌써 해가 지고 있었으니...)
(사평의 한 마을 풍경...)
사평휴양림 방향으로 더 들어가니... 다시 조그만 마을이 나왔다.
이런 조그만 시골에선... 아이들과 개는 감초처럼 등장하는 듯... ^^;
몇컷 더 찍고 아는분을 만나기 위해 다시 남광주로 돌아왔다.
남광주는 이 시를 쓴 곽재구의 고향이다.
지금 남광주역은 없어졌지만 한때 이 근방의 주요한 시장이
형성되었던 곳이라 한다.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남광주 역사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라진줄만 알았던 남광주역을 못간 아쉬움을 뒤로한채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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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 곽재구 "사평역(沙平驛)에서"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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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Fine Spring Day" from Eyes For You - Isao Sasa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