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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이야기

비잔틴 시대의 그레고리안 성가~

by 이브남 2016. 3. 24.


2000년 초, 솔렘 생피에르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부르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생전 처음 들었을 땐 그야말로 후덜덜 했는데,
십 수 년이 지나는 동안 일상다반사가 되어 지금은 이 단선율의 노래도
다른 고음악이나 바로크 음악과 별반 다르지 않고 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조금 독특한(^..^) 그레고리안 성가 음반을 소개해 봅니다.



앙상블오르가눔이 1985년에 녹음한 "비잔틴 시대의 로마교회 성가"입니다.
이 음반에 수록된 레퍼토리는 일반적으로 "올드 로망(Old Roman)"이라 하며
7~8세기에 형성되어 존재했던 비잔틴제국의 초기 로마교회 성가들입니다.
당시 서유럽은 프랑크 왕국이 "카롤링거 왕조"로 이르는 시기입니다.

이 성가들은 오늘날 "그레고리안 성가"와는 그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5세기 경, 서로마의 멸망으로 실질적인 로마제국은 막을 내렸지만,
동로마는 비잔틴제국으로 그리스, 터어키를 중심으로 계속 건재했고
이 성가들은 다분히 고대로마 시대 성가의 구조와 특징이 있습니다.
게다가 지역적인 특성으로 동양적인 느낌도 들려주고 있습니다.


 

앙상블의 지휘자 페레(Marcel Pérès)는 이 초기 성가들을 노래하기 위해
그리스 비잔틴 성가의 권위자와 협력하여 선법, 종지 및 장식법 등
고대로마와 비잔틴 성가 사이에 유사성을 찾아 복원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12세기 대표적 양식인 "오르가눔(Organum)"을 추가해서
노틀담 악파의 기묘한 초기 폴리포니를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단선율 아래 낮은 성부(베이스 아님)에서 정선율을 한 음 한 음 길게 늘어뜨려
노래(허밍과 비슷한)하는데 한음의 길이가 짧게는 수초, 길게는 수십 초에 이릅니다.

숨도 안 쉬고 그렇게 긴 동안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당시 고요한 대성당에 가득히 퍼졌던 이런 울림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중세 유럽의 성가와는 이질적입니다.
마치 불경을 외거나 무당들이 읊조리는 느낌이 더 비슷할 거 같습니다.
당시 잡지에 소개된 내용에는 "정말 아름다운..." 이라고 소개되었으나,
그 정도는 아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묘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
 



그리고... 더불어 있으면 좋을 커플링 음반입니다.

역시 앙상블오르가눔의 음반으로 "밀라노교회 성가"가 수록되어 있고,
5세기경 밀라노에서 발생한 이 성가를 "암브로시안 성가"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서로마의 멸망 이후 동고트족이 지배 하고 있던 이탈리아는
비잔틴제국이 다시 회복한 후 10세기 까지 영향 하에 있던 지역입니다.
이 음반에서도 페레는 "올드 로망"을 유지하면서 오르가눔 양식 외에
새롭게 그리스 교회와 시리아 안티오크 교회의 선법을 적용했습니다.

즉 앞선 음반과 전반적인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또 이 음반에는 그리스 정교와 비잔틴 성가로 유명하신
키루즈(Sœur Marie Keyrouz) 수녀가 참여하고 있어
더욱 가치가 있는 음반입니다.

그럼 그레고리안과 함께 경건한 밤 보내시기 바랍니다.

(~.~)


 


Alleluia - V. Epis si Kyrie
Ensemble Organum - dir. Marcel Pérès